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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Martial Arts Globe] 심신수련(心身修練)을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지도자(1편)

  • 조회수
    542
  • 작성일
    2021-08-27
  • 첨부

Photo by Thao Le Hoang on Unsplash, 본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윤정주


현재 국기원 공인 태권도 6단이다. 1984년에 태권도수련을 시작하였고, 2006년부터 해외(예멘, 요르단, 영국)에서 다양한 국적의 제자들에게 태권도 지도해오고 있다. Cardiff Metropolitan University(Wales, UK)에서 PhD(Sport and Hearth Sciences) 과정 중이며, ‘태권도를 통한 이주민과 난민의 사회통합에 관하여 연구를 하고 있다. 한편, 태권도수련에 의한 전인적 성장을 통해서 트라우마가 있는 수련생들을 돕는 데 관심이 있다.

 

문제 제기

무예 지도자에 의한 제자들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일이 종종 있다. 무예는 수련을 통하여 무력(武力, martial force)만을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인격수양(人格修養)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동철, 2011). 타인에 대한 예의범절과 존중을 가르쳐야 할 무예 지도자들에 의해서 무예 정신에 어긋나는 이러한 비윤리적 행위가 저질러지는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렇게 무예 정신을 저버리는 경우는 비단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해외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심판의 판정에 불복하여 심판을 가격한 한 쿠바 태권도 선수와 그에게 바른 무예 정신을 가르치지 못한 쿠바 태권도 감독이 세계태권도연맹 주최 대회에 영구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렇듯 국내외를 막론하고 무예 지도자가 그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일탈 행위를 벌이고, 더 나아가 제자들도 바른 무예인으로 양성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자격을 갖춘 지도자

한국 태권도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태권도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에서 태권도 시범을 안무하고 총지휘한 전 국기원장 이규형 대사범의 지도 경험과 철학을 통하여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심신수련의 솔선수범이다(송형석 & 이규형, 2009). 이규형 대사범은 태권도 인생 육십 년 동안 수천 명의 제자를 양성했으며 그의 제자들은 스포츠계, 연예계, 의료계, 법조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예의와 성실함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규형 대사범이야말로 양질의 무예 교육을 통하여 각계각층의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낸 자격을 갖춘 지도자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일 것이다. 그는 겨루기를 위주로 한 경기태권도 면에서는 발전이 두드러진 반면 태권도의 심신수련의 교육적 기능과 역할은 오히려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며 태권도 수련의 바람직한 가치관이 위협당하고 있는 실정을 걱정한다 (세계태권도연합뉴스, 2016).


요즘 태권도 지도자들은 잘못된 판단으로 태권도를 재미와 흥미 위주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곳의 아이들을 보면 지적, 정서적 발달은 정체되어있고 많이 산만해져 있는 경향이 나타나죠. 집중력이나 인내는 인성과 친밀히 연관되어있는데 태권도를 놀이 위주로 하다 보니 그것을 채워주지 못한 것이죠. (오마이뉴스, 2014)


열 살에 태권도에 입문하여 육십 년 이상을 거의 매일 태권도를 수련해오고 있는 이규형 대사범은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솔선수범의 자세라고 말한다. 그가 보여온 솔선수범은 다름 아닌 심신수련의 모습이다. 태권도 심신수련의 유익으로 체력, 인성 등을 강조하는 그는 여전히 태권도 격파를 통해 강인한 신체적 능력을 보여줄 뿐 아니라, 어린 제자들도 존중하여 항상 예의를 갖추는 등 빼어난 인성을 보여준다. “인성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 그것이 태권도의 목표다.”라는 그의 말에서 그가 태권도 수련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온 이규형 대사범은 무도정신이 녹아 있는 태권도 지도를 강조하는 동시에 지도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사람이 행해야 할 예와 도, 그리고 심신수련을 추구하는 정신을 제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예신문, 2014).

 


전인교육으로서의 심신수련

그렇다면, 이규형 대사범이 말하는 심신수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동양 무예 전통의 전인교육 방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인(全人)이란 인간이 지닌 모든 자질 즉, 신체적, 지적, 정서적 능력뿐 아니라 사회성, 윤리성 등을 의미하며 전인교육은 지식이나 기능 교육에만 치우치지 아니하고 전인적 특성을 전면적으로 조화롭게 발달시켜 건전한 인격을 갖추도록 돕는 교육방법이다. 전인교육의 중요성은 체육 교육계 안에서 지속해서 강조되어 왔다(이병준, 2007; 남중웅, 이정식, 2003). 무예 교육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특별히, 합기도, 태권도와 같은 동양 무예는 정신적, 철학적인 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으며 이를 신체적 능력의 향상과 함께 교육해왔다(김용훈, 2016).


교육을 통한 영향은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제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그 영향은 제자들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좋은 스승을 만나서 바른 가르침을 받는 것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강조했듯 전인교육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 그 이상을 의미하며, 윤리성, 사회성 등 인간 전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인교육은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하는 스승이나 지도자의 인격과 성품 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것을 됨됨이라고 말해왔다. 됨됨이(Being)가 훌륭해야 염치가 있고 사람답게 행동(Doing)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도 행위가 없는 됨됨이는 교육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교육 내용을 전달하는 지도 행위가 없다면, 전달자의 됨됨이가 교육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됨됨이가 전인적 교육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시사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고 기술적으로 탁월한 수행능력을 갖추고 있는 지도자라 하더라고 됨됨이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극단적인 경우 제자들에게 신체적, 성적, 심리적 가해를 가하여 전인적으로 심신이 병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인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지도자는 제자들의 전인적 성숙을 도모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예지도자는 어떻게 전인적으로 성숙하여 자격을 갖춘 지도자로서 양질의 무예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솔선수범의 심신수련이라고 본인은 주장하고 싶다. 심신수련은 전체론적(holistic) 수련 즉, 인간의 전인성을 염두에 두는 무예 수련으로 동양 무예 전통은 이런 수련방식을 예로부터 고수해 오고 있었다. 이는 심과 신을 구분하여 교육하는 이원론적 방법이 아니라 심신을 총체로 보는 일원론적 접근법이다.


김용옥(1990)

(Mom)은 오로지 몸일 뿐이며 육체도 아니며 체육의 대상도 아니다. 몸은 하나도 아니며 둘도 아니며 둘이 하나된 하나도 아니며 하나가 둘된 둘도 아니다. 몸은 오로지 몸일 뿐이다, 그것은 기의 목적론적 단위일 뿐이며, 유한한 자족체일 뿐이다. (ibid, 45)


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몸철학 혹은 기철학(氣哲學)에서 신심이 하나임을 설명한다. 그는 심신일원론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마음()과 육체()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전제하고 있으니 기만적 용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음양의 조화를 말하는 음양론이 음양의 구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그 조화를 말하는 것이듯, 심신일원론을 말한다고 심신의 구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니 그의 주장은 지나친 면이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몸철학을 통하여 몸이 연구의 대상으로서의 객관적 실체라기보다는 경험적 주체로서 주관적 실체임을 강조함으로 몸에 대한 이해에 크게 이바지했다. 더 나아가 그의 몸철학은 도()와 덕()의 이치를 설명함으로 몸의 바른 움직임과 운용을 통하여 전인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몸은 기의 유기적 단위다. 몸은 생명이다. 따라서 몸은 움직인다. 움직임이 없으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이 있다. 그 길을 우리는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도가 반복되어 몸에 쌓인 것을 덕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도는 생겨난 대로의 자연스러운 것이고, 덕은 도를 몸에 축적하여 얻은 것이다. 덕은 곧 득(, 얻음)이다. (ibid, 46)


다시 말하면, 몸의 반복된 훈련 혹은 수련을 통하여 길이 나게 되고, 그 길이 축적되어 덕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 덕은 몸의 반복된 움직임을 통하여 획득하여 체득된다는 것이다. 유가 사상 전통에서 덕()은 윤리와 수양의 측면에서 군자(君子)라는 바람직한 인간상과 연결된다. 올바른 덕은 미덕(美德)이라고 하며, 그것의 반대는 악덕(惡德)이라고 한다. 몸을 지속해서 바르게 사용하면 미덕이 체득되고, 몸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면 악덕이 체득된다. 김용옥의 몸철학을 요약하면, 몸을 바르게 반복적으로 운용하는 심신수련을 통하여 미덕을 쌓아 전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신일여의 일원론적 신체문화

김용옥의 몸철학은 김이수(2008)몸닦달수행과 유사한 면이 있다. 김이수에 의하면 한국의 신체문화에서 심()과 신()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인 일원론적 관점이었다. 우리말의 고어 ᄆᆞᆷ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예이다. ‘ᄆᆞᆷ은 신체를 의미하는 몸으로 읽을 수도 있고 마음을 의미하는 으로 읽을 수 있다. 김이수는 이렇듯 한국인의 몸은 신체라는 가시적이고 생리적인 의미 이상의 육체와 정신이 한데 어우러진 유기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p, 44). 그러므로 한국의 신체문화에서 심신수련이란 다름 아닌 육체와 정신의 유기체로서의 몸수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그는 몸닦달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심신일원론적인 신체문화는 불교의 심신일여(心身一如)라는 말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하나의 이상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심신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활을 쏘는 궁수의 심리적 그리고 신체적인 상태라고 여인성(2001)은 유아사(Yuasa, 1987)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을 한다. 김이수는 됨됨이가 바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몸닦달혹은 소매틱스’(somatics)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한다. 이는 몸과 마음의 긴밀한 관계 더 나아가 하나됨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나아가 이재학, 김창우(2007)는 한국 무술의 전통을 신체문화를 소매틱스 이해하고 소매틱스 신체문화를 강조하는 동시에 한국 전통무술의 부활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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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글은 저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ICM News 12월호(12.15. 발행예정)를 통해 2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